현대신학과 종교학

십계명 미드라쉬로 재해석 재창조

조슈아하 2014. 3. 6. 12:57

십계명은 계속 미드라쉬로 재해석하면서 재창조할 필요가 있다.

한번 십계명은 영원한 십계명이 아니기에 그렇다. 

약 2600년 전 구약성서의 십계명은

유대교의 미드라쉬 주석처럼

변화되는 새로운 맥락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를 해나가야 한다.

 

 

마치 2014년이란 오늘의 삶의 맥락가운데 펼쳐진 십계명을 만난 기쁨이다.

한겨레신문  조현 종교전문 기자가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남미 아르헨티나 이바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키비츠목사의 목회 신십계명 말씀이다.

조현 기자가 잘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만신창이나 다름없는 현 한국교회를

다시 각성시키며 되돌아보게 만드는 문구로 여겨진.

 

 

정의는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반쪽의 복음을 전체적으로 살려내라, 

현장에 길이 있다, 약자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세워라,

교회건물이 아니라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교회를 세우라, 

교회 안에 머물지 말고 사람들 안에 머물라,

대중성이 아니라 저항력을 길러라, 

다른 교회를 모방하지 마라,영성이 깨어날 침묵의 시간을 가져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라고 불렀다.”

 

유명한 남미 해방신학자 까마라 대주교의 표현처럼,

"한국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

미국 MIT 노엄 참스키의 언급처럼,

 

 

이제 한국에서 정치나 종교의 독재권력을 비판하는 일은

톡톡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공산주의자나 빨갱이란 주홍글씨로 쉽게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불행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키비츠 목사가 전한 신십계명을 가슴에 품고

삶의 현장에서 신앙으로 구현해나가려 고민하는 이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만들어진 신'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소개했던

무신론자들이 만들어낸 십계명이다.

어느 편이 더 가슴에 와닿을까?

마커스 보그의 언급처럼 현대인들에게 신앙의 언어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수천년이 지난 구약성서의 십계명이

글귀 하나 바뀌지 않은 가운데

신앙의 초자아로 존재하며 하나님 너머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십계명 중 일부 계명은

문자 너머 종교적 상징이 주는 신앙의 힘을 상실한 채

마치 프로메테우스의 침대처럼

아직도 현대 종교인들의 삶을 옥죄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