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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잃음과 새 얻음의 자기실현

조슈아하 2014. 8. 4. 20:50

버림받는 잃음과 새로운 얻음의 자기실현

 

2년을 넘게 몸담으며 애정을 쏟았던 공간으로부터 일종의 버림받음과 상실의 체험, 바꾸어 말해 주관적인 잃음의 경험을 했다. 버림받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아픔임에 틀림없다. 상실의 경험은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온 사회적 관계 안에 담지된 의지, 기대, 명예, 권리, 안정감... 모든 것을 잃음이요 내려놓음이다

 

 

 

그렇기에 십자가 위의 예수 또한 버림받음의 쓰라림을 이기지 못해 생의 마지막 순간 크게 외쳤지 않은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물론 예수의 고통은 오늘 현대인이 쉽게 카피하며 자기동일시할 수 없는 버림받음의 최고조에 해당된다. 무한적 존재인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극단적인 상실체험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음은 동시에 자기실현이란 구원의 길로 존재한다. 인간은 누구나 역동적인 자기 삶의 개성화 과정에서 잃음과 새로운 얻음을 되풀이하며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자기실현의 길을 걷게 된다. 내 경우엔 영국유학과 인도선교의 자리비움 과정에서 신으로부터 버림받는 듯한 힘겨운 삶을 경험했다. 엄청난 종교적 도전 속에 갈등과 번민의 잃음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잃음을 통해 동시에 자기실현의 길 또한 걷게 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수동적 버림을 능동적 버림으로 전환해 페르조나에 짓눌린 자아를 넘어 자기를 찾아가는 다른 삶의 여정을 시작했다.

 

 

과연 내 신앙의 좌표는 어디쯤 찍혀있을까? 삶을 되짚어보며 반추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목회자의 길에 발을 들인 후 십 수 년 동안 짓눌러왔던 신학과 신앙사이에 깊이 패인 골이 소거된 사실을 오래 전 발견했다. 버림 덕택에 덤으로 현장신학의 여러 자리까지 선물 받았다. 대안적인 평신도교회를 위한 신학과 신앙의 길은 무엇일까? 최근 몇 년 동안 벙커원교회에 평신도로 인카네이션해 교우들과 더불어 이런 질문을 갖고 고민하며 부대끼는 삶을 살기도 했다. 훌륭한 현장신학의 자리를 마련해준 교우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이제 또 한 번의 다른 버림과 더불어 새로운 인생의 장을 펼치게 되었다. 이번엔 금식기도를 통해 신의 뜻을 헤아리려 더욱 애를 썼고 무엇이 평화와 정의로운 공동선의 길인지 더욱 심각하게 고민하며 길을 헤쳐 나갔다. 아울러 존경하는 멘토자 가운데 하나인 아내의 탁월한 조언을 받으며 나로선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 같다. 나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존립과 지탱 가능성을 우선시하는 길을 모색했다. 조카 롯을 향해 양보의 길을 터주었던 아브라함의 배포일까. 부족하지만 한 인간이자 목사로서 할 수 있는 예수의 자기비움, 케노시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억측과 편견에 일일이 항변하지 않고 버림과 상실을 떠안고 그냥 지는 길을 택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말이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도전과 모험.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내 인생 키워드로 자리매김한 것 같기도 하다. 또 한 번 껍질을 깨고 부화를 할 수 있을까쿵쾅거리는 육체적 심장 박동 소리는 아니지만 영혼의 울림이 자아내는 작은 설렘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