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빛 인문종교 아카데미

신의 역사 신을 위한 변론 카렌 암스트롱 리뷰

조슈아하 2016. 6. 3. 14:22

 

 

'과신대' 이슈와 관련해 코멘트를 남긴 탓에 카렌 암스트롱 저, <신의 역사> 와 <신을 위한 변론> 페이지를 다시 넘기고 있다. 두 권을 같이 펼쳐놓고 읽으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자는 이론적 통찰, 후자는 실천적 깨달음에 비중을 두고 접근해 본다. 서두에서 먼저 눈에 크게 들어온 문장이다.

 

1. 신의 역사

"사실 이성적인 인간(Homo sapiens)은 또한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과 마찬가지로 종교 역시 남용될 수 있겠지만, 인간은 언제나 종교 생활을 해왔다. 종교는 인류에게 자연적인 것이다.. 휴머니즘은 그 자체로서 신 없는 종교인 셈이다."

 

"신에 대한 인간의 관념은 역사를 갖고 있다. 신이란 단어에는 변하지 않는 관념이 내포되어 있다기보다 서로 모순되고 심지어 상호 배타적이지까지 한 의미들이 총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융통성이 없었더라면 신 관념은 결코 인간의 위대한 개념의 하나로 살아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신에 대한 어떤 하나의 생각이 의미나 적절성을 상실했을 때 그것은 조용히 폐기 처분되고 곧 새로운 신학으로 대체되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를 살펴볼 때 '신'에 대한 어떤 객관적인 견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각 세대는 자신들에게 유용한 신의 이미지를 창조하여야 한다."

 

"무신론은 종종 과도기적 상태이기도 하였다. 즉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은 모두 신성과 초월에 관한 혁명적인 견해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인해 그 당시 이방인들로부터 '무신론자'라고 불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무신론'도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더이상 적합하지 않는 '신'을 거부하는 비슷한 몸짓일까?"

 

"더 이상 효능이 없어지자마자 신 개념은 변화하며 어떤 때는 아주 급진적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신 관념은 전적으로 인간들이 만든 것이고 그 관념들이 상징하는 실재와는 전혀 분리된 것이다.. 신학은 지겹고 추상적이라는 인상을 자주 주는 반면, 신의 역사는 격정적이고 강렬하다. 궁극을 말하는 다른 개념과는 달리 신개념은 원래 몸부림치는 투쟁과 긴장을 수반하였다."

 

"신에 대한 모든 토론은 인간 언어의 극복할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일신론자들은 초월적 실재를 나타내는 언어의 능력을 부정함과 동시 언어에 대해 언제나 긍적적이기도 하였다.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의 신은 어떤 의에서 '말하는' 신이다. 신의 '말씀'은 세 신앙에서 결정적이다. '신의 말씀'이 서구문화의 역사를 형성한 것이다. 우리는 '신'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2. 신을 위한 변론

"이 세상 모근 종교들이 한결같이 주장한 바에 의하면, 진정한 영성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느낄' 줄 아는 실천적 공감(compassion)으로부터 부단히 표현되어야 한다. 종래의 신 개념이 타인에게 공감하고 타인을 존중하도록 고무한다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신은 3000년을 이어온 유일신의 역사 속에서 발전되어온 수많은 신 개념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신'은 한계가 없기에 그 누구도 신이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종교는 본래 사람들이 '생각한 무엇'이 아니라 '행한 무엇'이다. 종교의 진실은 실천적 행동으로 얻어지는 것이었다.. 종교는 우리 마음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도록 가르치는 실천적 수련이다. 종교적 교리를 의례나 윤리적 행동으로 옮겨 행했을 때만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깨우침의 조건 중 하나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진실을 인식하기 위해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꺼이 놓아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종교에 관해 배운 수많은 것들을 잊어야 할지도 모른다. '신'이라 불리는 것에 관해 말하기는 쉽지 않으며 종교적 탐구는 일상적인 사고의 틀을 신중하게 해체하는 데서 시작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