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과 종교학

에릭 프롬,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1

조슈아하 2015. 3. 11. 11:42

에릭 프롬,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1장

 

모든 사람과 나의 공통점이다.

내가 보고 듣고 먹고 마신다는 점은 모든 동물과 나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내 본성은 오로지 내 것이며,

내 안에 있어야 마땅하며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고

천사나 하나님의 것도 아니다.

내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있다는 점 말고는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 에릭 프롬의 책을 다시 끄집어 내고 에크하르트의 문장을 빌어 1(하나님에 대해서) 몇 단락을 곱씹어보았다.

 

심리적, 정신적 경험과 관련된 어떤 현상을 말이나 개념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과 함께 생겨났다가 발전하거나 사라진다. 사람이 변하면 말이나 개념 또한 바뀐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불변성과 가변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사람의 경험을 반영하는 모든 개념은 불변성과 가변성을 띤다. 하지만 경험을 반영하는 개념은 그 경험과 괴리되지 않은 경우에만 저마다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 개념이 경험과 괴리되면 그것은 현실성을 상실하고 인간이 상상으로 꾸며낸 가공물로 변질되고 만다. 허구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데, 개념을 사용하는 자는 누구나 그 개념의 토대가 되는 경험의 실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 개념과 경험이 괴리되면 어떤 경험을 표현하는 사상은 한 인간의 내면에서 근원적 실재가 차지하는 지위를 빼앗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 그래서 역사는 사상을 만든 주체이자 실재하는 구체적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역사가 된다.”

 

하나님이란 개념은 부족장이나 국왕이 최고 권력을 장악한 사회정치적 구조가 존재함으로써 조건 지어졌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최고 권력과 비슷한 것으로 개념화된다. 하나님은 본래 실재가 아니라 휴머니즘에 담겨 있는 최고 가치를 시적으로 표현한 여러 단어 중 하나다. 한 민족이 성장하고 발전함에 따라 하나님의 개념도 성장하고 발전한다. 인간의 첫 번째 불복종 행위가 인류 역사의 기원이다. 인간의 자유는 거기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창조된 순간부터 반항자로서 장차 하나님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앞길이 열릴수록 인간은 더욱 하나님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검토할 때, ‘에흐예(야훼)’존재하다라는 동사의 미완료 시제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는 하나님이 존재하지만 그 존재가 어떤 물체처럼 완성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과정이며 생성과정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행한다는 뜻이다.”

 

우상은 인간이 마음속 깊이 열망하는 표본이다. 그것은 땅, 곧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이며 소유, 권력, 명예 따위에 대한 갈망이다. 우상으로 상징되는 열망은 인간의 가치 체계 안에서 최고의 가치에 해당한다. 인류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우상숭배의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원시시대에는 진흙이나 나무로 된 우상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우상화된 신의 은총으로 신격화된 국가와 지도자, 생산과 소비라는 우상이 있다.(필자는 여기에 민족도 덧붙이고 싶다). 인간이 무력해질수록 우상은 더욱 강해진다. 우상한 어떤 경험에서 인간 자신이 소외된 형태이다. 소외된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외부 사물로 변형시킴으로써 스스로 무기력해진다. 우상숭배는 필연적으로 자유, 자주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우상숭배를 자기 학대와 자기비하로, 하나님 숭배를 자기해방과 타자로부터의 해방으로 거듭 규정짓는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삶의 목표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계시하지만, 둘 중 어느 쪽으로 가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인간 발달의 최고 기준이 자유라고 보는 어느 종교체계든 상황은 같다. 우상숭배는 본질적으로 복종을 요구하는 반면, 하나님 숭배는 자주를 요구한다.”

 

종교적 체험은 반드시 유신론적 개념과 관련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요컨대, ‘종교적체험이라는 유신론적 개념은 물론 무신론적, 심지어 반유신론적 개념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인간의 경험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차이점은 여러 개념화의 근저에 있는 경험의 실쳬가 아니라 경험의 개념화다. 개념화가 아닌 경험을 분석한다면,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이들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들의 종교 체험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다.”

 

1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유일신 사상은 인간 실존의 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해답이다. 인간은 인류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이성이라는 인간의 특별한 자질을 최대한 개발함으로써 세계와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상숭배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처음에는 부족장이나 왕에 관한 정치사회적 개념에 따라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인간에게 사랑과 정의라는 자신의 원칙을 따르게 하는 일종의 입헌군주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어떤 것도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볼 수 없는 이름 없는 하나님이 된다. 이처럼 아무런 속성이 없는 하나님은 침묵으로 예배 받으며, 더는 권위주의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인간은 완전히 자주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심지어 하나님에게서도 독립된 존재를 뜻한다. 인간 발달의 목표는 자유와 자주다. 자주는 탯줄을 끊어버리고 자신의 실존을 자기 자신에게만 내맡길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컨텍스속에서 텍스트 보기를 게을리 하며 문자적인 해석에만 집착하는 근본보수주의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래 문장은 핵폭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히려 거기에서 주체적인 참된 신앙의 발현을 보아야 한다. 신학자 본회퍼의 표현처럼, '신없이 신과 함께'하는 '종교 없는 기독교'의 모습이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예수 역시 이를 반듯하게 체현한 분이 아닐까싶다. "인간의 첫 번째 불복종 행위가 인류 역사의 기원이다. 인간의 자유는 거기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창조된 순간부터 반항자로서 장차 하나님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앞길이 열릴수록 인간은 더욱 하나님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